내 상처가 길이 된다면.
지난 주에 돈 얘기 했으니까, 오늘은, 제 이야기 한 번 들어보실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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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형 실패 기록집 오픈합니다.
사람들이 종종 그래요. 또, 많은 분들이 이렇게 생각하고 계실 거예요.
"저 사람은 원래 잘했겠지?'
하지만, 제 흑역사를 보면 생각은 조금은 달라질 수 있을 거예요. 눈물 없이는 못 볼, 처절하게 망했던 도전들. 쪽팔리고, 창피하고, 차라리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던 순간들. 부모님 평생 모르셔야 할 상처들까지…🥲
방황하던 10대, 더 헤맸던 20대. 그래도 버텨보겠다고 발버둥 치던 그때의 노력들. 그 감정과 실패들을 결국은 제가 오롯이 견디며 지나왔습니다.
이제 그 과정을, 가감 없이 그대로 털어놓으려 해요. 혹시 모르죠, 제 상처가 누군가에겐 길이 될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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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투사 지원 → 떨어진 썰 (당시 토익 780점 이상 뺑뺑이),
다니고 싶던 회사 떨어진 썰 (구글) → 면접만 3번 봄
이런 자잘한(?) 실패 에피소드는 과감하게 생략하겠습니다. 바로 갈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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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국 1년 학비 3,000만원 → 1년 유급의 잔인한 대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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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유학을 했습니다. 만 11살 때 영국에 가서, 햇수로 12년 동안 있었네요. 학부 시절, 경제학을 공부했어요.
고등학교 때 경제학 성적이 괜찮았고, 또 그게 재미있으니까 "이거다!" 싶었죠. TMI지만, 영국에서는 경제학 입결이 경영학 입결보다 많이 높아요. 한국과는 정반대죠. 그래서 별다른 고민 없이 전공을 골랐어요. 인기 전공이었기도 했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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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막상 대학에서 만난 경제학은 상상과 달랐어요. 제가 매력을 느꼈던 건 삶과 현실에 닿아 있는 경제학이었는데, 대학 강의실에서 만난 건 수식과 그래프,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경제학이었거든요. (※ 영국의 BSc Economics는 한국의 이과 경제학에 가깝습니다.)
첫 달부터 "이 길이 맞나?" 하는 의심이 생겨서, 그때부터 저는 오히려 전공 바깥의 세계로 빠져들었요🤣🤣🤣 선택 과목을 철학, 법학, 윤리학, 역사학… 온갖 인문학으로 다 꾸겨 넣었죠. (선택 과목 점수는 좋았음)
특히 철학이 재밌었어요. 성적을 위한 공부라기보다는 인간 세계를 탐험하고, 인간 행동을 분석하고, 질문하고 답하는 과정에서 묘한 즐거움을 느꼈죠.
그때쯤 저는 처음으로 자유라는 개념과 마주했어요. 자유와 행복에 대해 고민했고, 세상이 정해놓은 길이 아니라 나만의 길을 찾아야겠다고 다짐하기 시작했습니다.
HOXY 지난 주 [자유] 주제 뉴스레터 놓치셨다면, 망형의 자유론 보러 오시죠 (클릭 시 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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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게도, 전공 성적은 형편없었어요. 납득이 안 되면 애초에 흥미를 못 느끼는 성격이거든요. 결국 유급까지 당했죠. 동기들보다 1년 더 학교에 다니게 된 겁니다.
그 순간은 진짜 좌절이 컸습니다. 자존심도 산산조각 났고, 동기들은 다 졸업하는데 저 혼자 남아 학교에 덩그러니 남아 있는 느낌. 그 고립감이 생각보다 훨씬 더 외로웠습니다.
아니… ㅋㅋㅋㅋ 지금 돌아봐도 이 얼마나 쪽팔린 일입니까. 남들 앞에선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도 속으론 땅 속으로 파고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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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나는 그냥 낙오자였고, 실패자였고, 솔직히 말하면 도망치고 싶었던 비겁자였습니다
거기에 월세, 생활비, 부분 학비, 부모님이 감당해야 했던 걸 떠올리면 속이 쓰리고, 죄송한 마음에 밤마다 이불킥을 했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어찌 보면 그냥 유급일 뿐인데, 그때 제겐 세상이 무너지는 사건이었습니다. 좌절, 수치, 죄책감, 모든 게 한꺼번에 몰려왔던 시기였죠.
부모님께 면목이 없어 장문의 이메일을 쓰기도 했어요. [앞으로 이 1년 동안 어떻게 성장할지] 계획표를 보냈던 게 2012년 9월 새벽 다섯 시쯤이더라고요. (지금 봐도 참… 자신감 하나는 넘쳤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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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지금 오랜만에 다시 읽어보는데 속이 울렁 거릴만큼 그때의 아찔했던 기억이 다시 올라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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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웃긴 건, 바로 그 유급의 1년이 제게 기회였다는 겁니다.
국회, 서울대, 한국석유공사, 한국행정연구원… 짧은 기간에 인턴을 몰아서 하면서, 지금까지도 유효한 네트워크와 경험 자산을 얻게 됐으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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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긴데... 국회의원 브랜드 블로그 관리하는 사람 생소하죠? 그게 바로 저예요.
여기서 다 풀긴 어려우니까, 링크 남겨둘게요.
국회의원 블로그 10개 관리하면 얼마 받을까? (클릭 시 이동)
지금 돌이켜보면 그 경험이 결국 전문직 브랜드 블로그, 기업 대표 퍼스널 브랜딩을 돕는 데 큰 자산이 됐습니다. 세상일 진짜 모릅니다. 그때는 제 인생의 흑역사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제 무기가 되어 있거든요. (호달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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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한인 학생회장을 맡았어요. 물론 역대 훌륭한 회장님들은 학업도 잘 챙기시고 회장 역할도 잘 해내셨는데, 저는 이게 또 제 본업처럼 됐어요. (엄마 또 미안해🥲)
신입생들 온보딩을 돕고, 총동문회를 기획하고, K-Pop 파티에, 한국 음식 소개 행사에... 말 그대로 '외교관' 같은 역할을 했죠.
이게 은근히 재밌더라고요. 공부는 뒷전인데, 행사 하나 기획부터 스폰서십 계약, 지역 상인들 만나서 협상하고, 사람들 모으고, 그게 그렇게 짜릿할 수가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 점점 더 학업에서 멀어졌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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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시죠? 저 위에 "돈벌자" 학생 때 이미 사업을 생각하고 있었다는..ㅎㅎ
물론 그때야 20대 초반이고, 학업이 세상 전부인줄 알았을 때라, "성적이 좋아야 대학원도 가고 취업도 잘 될 텐데" 이 머리 속 계산은 알면서도, 자꾸만 다른 길로 빠지게 됐어요.
근데 웃긴 건 뭔지 아세요?
그때 학생회장 경험이 결국 지금의 저를 먹여 살리고 있다는 겁니다.
신기하죠? 최근에는 좀 쉬고 있지만, 예전엔 거의 매달 20명, 50명, 많을 땐 100명 넘는 사람들을 모아서 가치를 나누는 자리를 만들었어요.
제가 스레드에 [커피챗], [네트워킹], [커뮤니티] 단어를 가장 많이 언급한 사람들 중 한명일 거라 자부하는데, 그거 다 영국에서 배워온 거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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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 제이로드님과 함께했던 +100명 커리어 믹스(Career Mix)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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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엔 혼자서 네트워킹 모임을 독자적으로 꽤 큰 규모로 진행하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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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평생 실패란 없는 거예요.
저는 사실 애초에 실패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진짜예요, 억지 위로가 아니라 ㅋㅋㅋ)
성적은 엉망이었고, 유급까지 했지만, 그래서 자존감은 바닥인 낙오자였지만, 제가 그때 쌓아올린 경험이 지금의 저를 지탱하고 있으니까요.
아, 그때 저보다 1년, 2년 앞서갔던 친구들요? 요즘 만나면 제가 밥 삽니다 ㅎㅎ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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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대기업 증권사 주임 → 대리, 진급 누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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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제 직장생활 어땠을 거 같아요? 제가 글 쓰고 사업 하는 거 보면 빠릿빠릿하게 잘 했을 거 같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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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회, 한국석유공사, 한국행정연구원, 기업 연구원, 서울대학교, 한국투자증권… 심지어 두 차례의 창업까지. 또, 겉으로 보면 나름 화려해 보이죠.
근데 인턴, 물경력 다 빼고, "그래도 내가 회사생활 좀 했다"라고 인정할 수 있는 곳은 딱 한 군데입니다.
한국투자증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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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서 대학원 졸업하고, IB 해외대 공채로 입사했어요. 좋은 선후배들도 만났고, 진급 대상에도 올랐고, 한 번이었지만 억대연봉도 2년차에 받았고, 뭐 나쁘지 않아 보이죠? 그런데… 저는 회사에서도 부적응자였습니다😂
글로만 보면 세상 다 통달한 도사 같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실상은 팀 회식 한 번 제대로 안 나가는 사회성 제로의 신입사원이었어요. 부장님이 "저녁 같이 먹자" 해도 단 한 번도 흔쾌히 응하지 않았어요.
괜히 '아부 떨고', '잘 보이려는 행동'을 하고 싶지 않았던 거죠.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그땐 왜 그렇게 고집 부렸는지... 네, 그냥 사회 부적응자 확정이었습니다 ㅋㅋㅋ
(아, 물론 폐급처럼 대놓고 그러진 않았구요. 어떤 느낌인지 제 구독자분들은 이제 다 아시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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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진급 대상에 올랐음에도 누락. => (쉿🤫부모님은 모르는 사실)
놀랍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덤덤했어요. 그때의 태도로 진급했더라면 부서에 피해만 줬을 게 뻔하니까요.
아! 오해하시면 안 되는 게 있어요 (어필 ㅋㅋ) 저는 입사 전 이미 석사 학위를 마쳤기 때문에, 동기들보다 1년 먼저 진급 대상에 오를 수 있었던 거예요.
진급 확정이 아니라 단지 대상자 명단에 올랐다는 의미였죠. 그래서 괜히 동기들보다 먼저 이름이 올라가 놓고 결국 누락이 된 건데도 기분이 묘했어요. 0고백 1차임 같은 허무한 느낌이랄까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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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본인은 덤덤하고 그냥 기분 이상한 정도인데 주변에서 괜히 조심스럽게 대하고, 위로해주려고 하고, 그런 무거운 분위기가 너무 싫었어요🤣🤣🤣 저 때문에 괜히 부서 선배, 후배님들도 눈치 보는 것 같고...
그 시기 팀 내에서도 팀장님들이 연이어 진급에서 밀려 있었고, 본부나 부서 성적도 좋지 않아서....라고 당시 부장님께서 말씀주셨는데.... 그런데 사실 다 떠나서, 제가 정말 일을 잘하고, 싹싹하고, 희생하고, 팀에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면 예뻐서라도 어떻게든 진급시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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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자부심이 있었어요. 제가 꽂히면 로열티 하나 기가 막히거든요.
대한민국 탑티어 증권사 IB에서 일한다는 것 자체가 주는 무게감. 그리고 코로나 채용 한파 속에서 공채를 뚫고 들어온 제 자신에 대한 자부심. 그걸 부정할 수는 없었죠.
그런데 대기업의 비효율과 답답함이 매일같이 저를 옥죄었습니다🥲 "왜 이걸 이렇게 하지?"라는 질문이 쌓이면 쌓일수록, 마음속 현타도 같이 불어나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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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입사 전에 사업을 해본 경험 때문일 겁니다. 아무리 구멍가게 사장이었다 해도, 한 번이라도 직접 의사결정을 해본 사람은 다시 직원 마인드로 돌아가기 힘들거든요.
결국, 절이 싫으면 중이 나가야죠. 여의도의 가장 추운 시기, 취업 한파 속에서도 저는 제 발로 회사를 걸어나왔습니다. 억대 연봉이었지만, 쉽게 얻은 만큼 미련도 없었습니다.
드라마도, 이벤트도, 포장도 없이 그냥 담백하게. "부장님, 저 퇴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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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이런 사람을 보통 '부적응자'라고 부르더라고요.
맞습니다. 인정합니다. 하지만 저는 알아요. 누군가는 좋은 학교 졸업하고, 대기업 입사하면 인생이 완성됐다고 믿지만, 저는 거기 멈춰 있을 수 없었습니다.
회사생활은 제 삶의 아주 작디작은 일부일 뿐이고, 제 인생은 훨씬 더 크니까요. (입사 Day 1부터 3년 딱 다니자 생각하고 들어갔다면 믿으실까요?)
진급 누락, 그리고 퇴사. 그 순간만 떼어놓고 보면 누가 봐도 실패였죠. 스펙 좋게 들어가서, 승진도 앞당겨 기대됐는데 결국 누락.
남들이 선망하는 회사에서 억대 연봉을 두고 나온 퇴사, "쟤 결국 못 버티고 나온 거 아냐?" 이런 말 듣기 딱 좋은 그림이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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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지금 돌아보면, 그건 전혀 실패가 아니었어요.
회사를 다니면서 배우고 얻은 건 많았어요. 대기업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IB라는 업계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조직에서 숫자와 성과가 어떻게 평가되는지, 이건 그때 아니었으면 평생 몰랐을 거예요.
또, 대기업 출신, 또 누구나 알만한 회사 출신이라고 하면, 이 야생판에서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최소 수준의 검증을 마친 사람'으로 인식해주더라구요. 그게 퇴사 후 영업할 때 큰 자산이 됐죠.
※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게, 특히 소위 '이름값' 있는 회사에서 나와 사업하는 분들, 유통기한이 있어요. 또, 퇴사하고 사실상 백수니 본인은 자존감이 굉장히 낮아 있는데, 그러실 필요가 없어요. 이미 그 출신인 것만으로도, 수십, 수백명의 경쟁자(?)를 앞지르는 거거든요. 다만, 그 각도랑 톤앤매너를 잘 잡는 게 중요하죠.
무엇보다, 사람. 좋은 선배와 동기들, 거래처, 각종 네트워크. 그 인연들이 아직도 제 인생 곳곳에서 힘이 되고 있어요. 그 관계는 돈으로 살 수도, 책으로 배울 수도 없는 거잖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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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회사에서의 좌절이 없었다면 저는 제 길을 찾지 못했을 거예요. 퇴사라는 결정을 내리면서, 비로소 제 안에 있던 확신이 선명해졌거든요.
"아, 나는 남이 정해놓은 길을 걸을 수 없는 사람이구나." 그래서 진급 누락도, 퇴사도, 결국은 제 자산입니다. 그게 없었으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테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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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렇게 말하면 좀 이상해 보일 수 있는데요..ㅎㅎ 근데 저는 요즘, 실패를 오히려 찾아다녀요. 감각이 생긴 거죠.
실패? → "아, 이건 내 성장으로 이어지는구나."
그래서 저는 실패가 두렵지 않아요. 오히려 실패가 없으면 불안할 정도예요. 왜냐면, 실패가 곧 제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니까요.
실패? 그 실패마저 제가 선택한 실패면, 의도된 실패라면, 제가 선택할 자유를 행사했다는 의미 아니겠어요?😏 남이 정해준 길에서 미끄러진 게 아니라, 제가 선택한 길에서 부딪힌 거라면, 그건 실패가 아니라 경험이고, 자유의 또 다른 이름이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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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생애 첫 사업의 실패, 인생 가장 자존감이 낮았던 시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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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직장이란 뭘까요? 다들 어떻게 정의하시나요?
보통 첫 직장은 사회생활의 시작이자, 평생 커리어를 닦아갈 기본기를 배우는 곳이라고 하죠. 연봉협상할 때도 첫 직장이 기준이 되고, 인생관, 직업관에도 큰 영향을 주고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주변을 둘러보면, 다들 대기업, 공기업, 명문대 박사 과정, CPA나 고시 준비…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었습니다. 그게 제 주변의 평균치였죠. 근데 이상하게도 전 그 길이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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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달라야 해. 다르게 가고 싶다."
네, 관종 욕구, 반골기질이 또 피어오른 거죠. 그래서 제 첫 직장은 대기업이 아니라, 중소기업 광고마케팅 회사였습니다. 멋있게 포장하면 '강남 소재 힙한 퍼포먼스 마케팅 스타트업' ㅋㅋㅋㅋㅋㅋ 현실은? 그냥 흔한 소규모 광고 대행사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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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전역하고 친한 친구가 투자자를 소개해줬고, 인수 과정에 합류하면서 시작된 첫 커리어. 광고 실무는 피인수된 회사의 베테랑 팀장님들이 맡았고, 저는 사업개발, 신사업, 파트너십 같은 굵직한 일들을 담당했습니다.
20명 남짓한 또래들과 함께, 광고에 무지했던 제가 직책상 2인자로 합류한 거죠. 영어 잘한다는 이유, 유학했다는 이유, 영업에 필요한 와꾸, 스펙, 배경 등 '7의 남자'로 나쁘지 않다는 판단이었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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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직장에서 배운 것들 광고회사의 일은 단순해요.
고객사의 고민을 파악하고, 산업과 제품을 분석한 뒤, 성과를 낼 수 있는 전략을 짜고 실행하는 것. 겉으로는 거창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스펙, 배경, 학벌 무관하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죠.
대체가능성 100%. 전문성 0%.
그때도 "왜?"를 고민 했었어요. "왜 나랑 일해야 하지?", "나만이 줄 수 있는 가치가 뭘까?" → 이게 결국 납득이 안 됐는데, 이건 후술하겠습니당 ㅋㅋㅋ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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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제가 맡은 첫 프로젝트가 생리대, 임산부 속옷, 중고차 광고였거든요. 당시에 뭐랄까, 사업이라고 하면 막연히 토스, 쿠팡, 당근마켓 같은 당시 힙한 회사랑 일할 줄 알았는데… 현실은 달랐습니다.
친구들은 반짝이는 회사에서 커리어를 쌓고 있는데, 저는 "형, 생리대 판다며? ㅋㅋ" 이런 소리 듣고 있었죠. 모멸감을 느꼈습니다 ㅋㅋㅋㅋ 솔직히 창피했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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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마케터분들 많이 공감하실 것 같은데 ㅋㅋㅋㅋㅋ 바이럴 마케팅 처음 접하면요, 웬만한 사람들 멘탈 다 깨집니다. 특히 저처럼 "왜?"가 습관인 사람들, 살짝 정직(?) 쪽에 속하는 분들, 편법이 낯선 사람들, 이 바닥 한 번 제대로 알게 되면, 현타... 제대로 옵니다.
알고 보니 우리가 매일 보던 후기, 리뷰, 댓글, 그 중 상당수가 전부 기획된 거였고, 사람 마음 건드려 자연스러운 척 조작하는 판이었다는 걸 알게 되면 혼란스럽죠.
저는 그걸 알게 된 순간, 세상이 갑자기 흑백으로만 보이더군요. "아.. 내가 믿던 게 다 연출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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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시기를 돌아보면, 군 전역하고 나서 “난 일반 회사원은 되지 않을 거야”라는 허세 섞인 다짐 하나로, 철없이, 겁도 없이 사업판에 뛰어들었어요.
솔직히 말하면, 그냥 막 굴렀죠. 어쩌면 인생에서 자존감이 가장 낮았던 시기일지도 모릅니다. 잘하는 것도 없으면서 괜히 잘난 척하고, 내면은 휘청거리면서 겉으론 번지르르하게 포장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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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저는 스스로를 광내기에 바빴어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 "잘 나가고 싶다"는 욕망이 늘 어깨 위에 얹혀 있었죠.
그래서 인정 욕구도 더 강했고, 작은 성취에도 들떴다가, 사소한 실패에도 한없이 무너졌습니다. 돌이켜보면 참 철없었고, 많이 헤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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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엄마가 서울에 올라왔는데요, 사실 딱히 일이 있어서 오신 건 아니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아들이 잘 지내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으셨던 거겠죠.
그때 저는 원룸 오피스텔에 살고 있었는데, 엄마는 도착하자마자 피곤했는지 곯아떨어지셨습니다. 그런데 옆에서 곤히 주무시는 엄마 모습을 보는데, 괜히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괜히 들킬까 봐, 그냥 웃으며 물만 벌컥벌컥 마셨어요. 사실 저는 속으로 "나 괜찮아, 나 잘하고 있어" 스스로 수없이 되뇌이고 있었어요.
그게 지금까지도 제 마음속에 남아 있는 아주 조용한 비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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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엄마한테 잘 살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 급하게 맨 선물 받은 구찌 넥타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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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엔 돈이 정말 없었어요🥲
공동대표에 법인이었어서 더 그랬던 것도 있구요. 회사에서 대표랍시고 큰소리치고 있었지만, 실상은 ㅇㅇ동 생활맥주에서 직원들 몰래 알바 뛰던 사람이 저였어요.
가끔은 용돈 드릴 돈이 없어, 바쁘다는 핑계로 부모님 찾아뵙지도 못했어요. 실은 손에 쥔 게 없으니까, 부모님 앞에서 빈손인 게 너무 죄송했거든요. 실은 너무 보고싶었단 말야.
동기, 친구들은 으리으리한 대기업에서 월급 받고 용돈도 드리고 있는데 난 뭐하나 싶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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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사업하고 좋은 건, 돈 벌어서 매달 엄마한테 용돈 드릴 수 있다는 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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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는 그럴듯하게 굴고, SNS에선 잘 나가는 척 글을 쓰면서, 속으론 한 푼 두 푼에 허덕이고 있던 시절. 누가 보면 참 극적이지만, 저한텐 그냥 매일의 현실이었습니다.
그렇게 비참하고 궁상맞은 시간들이 저를 철저히 망가뜨리기도 했죠. 솔직히, 그때는 취직 할까? 생각도 참 여러 번 했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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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동시에 그 치기 어린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저를 단단하게 만든 것도 사실입니다. 그때의 부끄러운 욕망과 상처들이 지금은 제 인생의 자양분이 되어 있다는 걸, 이제는 솔직히 말할 수 있어요.
배운 건 분명 있습니다. 무엇보다 당당함이에요. 무언가를 판다고 해서 부끄러울 필요 없다는 것. 거래는 등가교환이고, 고객이 필요하니까 사는 거죠.
괜히 마케팅 전략 컨설턴트라고 포장할 필요 없이, 그냥 "광고 팔아요"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걸 배웠습니다. 보험 팔면 금융 컨설턴트라고 말하지 않고 보험 판다고 말 할 수 있어야죠. 가치만 준다면 뭘로 불리는 게 그렇게 중요할까요?
(진짜 야전에서 구르면서 '상인'의 마인드를 장착하게 된 듯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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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경험들 때문일까요? 회사에 있을 때도 팀장님들이 가끔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야, 너는 신입사원이 임원들이랑 얘기하는데도 하나도 안 떠네? 긴장 안 되냐?"
맞아요. 저는 누굴 만나도 크게 주저하지 않죠. 사장님을 만나도, 회장님을 만나도, 심지어 낯선 자리에서 처음 마주한 사람이라도, 스몰토크부터 일 얘기까지 자연스럽게 이어갈 수 있어요🤫
이건 제가 타고난 성격이 아니라, 앞서 말한 방황과 실패, 별의별 경험들 속에서 얻은 감각 같은 겁니다. 상대방이 어떤 사람이든, 결국 똑같은 고민을 하고 똑같이 웃고 울더라는 걸 몸으로 배웠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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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예전엔 이런저런 변명, 핑계 대며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려던 제 모습이 있었습니다. 그때 제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환멸이 나더군요. 더 이상 그런 찌질한 도망자는 되고 싶지 않았어요.
내 손으로 만들고, 내 손으로 무너뜨린 내 피조물. 그걸 5년 만에 다시 되찾으러 가고 싶었죠.
퇴사를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그리고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는 지금까지도 가장 큰 힘이 되어준 건 결국 '과거의 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저는 더 이상 실패한 사람이 아니겠죠.
뉴스레터에는 다 담지 못한 실수와 실패담들이 사실은 훨씬 많습니다. 이번 글을 쓰면서도 그때의 감정들이 올라와서 평소보다 문장을 더 많이 끊어 썼어요. 그런데도 좋네요. 쓰다 보니 저 스스로가 단단해진 과정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요.
망했던 순간들, 창피했던 장면들이 결국은 저를 여기까지 데려왔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정의하는 실패는, 실패를 끝까지 실패로 남겨두는 겁니다.
여러분은 실패를 어떻게 마주하고 있나요?
넘어질 수는 있어요. 주저앉을 수도 있죠. 하지만 다시 일어서려는 순간, 그건 더 이상 실패가 아닙니다. 여러분도 아직 끝내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두, 실패한 사람이 아니라 여전히 도전 중인 사람일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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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라도 제 이야기가 더 궁금해지셨다면? (클릭 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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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퍼스 뉴스레터를 뒤늦게 알게 돼서,
이전 뉴스레터를 못 본 게 아쉽다는 말이 많았어요.
그래서 조용히, 잠깐 열어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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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도 많이 남겨주실 거죠?
"잘 봤어요" 한 마디 만으로도 저에게는 엄청난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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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는 유독 여러분의 피드백이 궁금해요! 제가 겪은 개인적인 이야기도 흥미로우실지, 아니면 역시 돈 버는 얘기가 더 솔깃하실지요. 물론 1,500명이 넘는 구독자분들 취향을 하나로 모을 수는 없겠지만, 이번만큼은 생생한 후기를 직접 들어보고 싶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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