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오늘, 나는 처음으로 나를 선택했다. 1. 2년 전 오늘, 나는 처음으로 나를 선택했다.
사실, 퇴사 1년 차는 정신이 없었습니다. 앞만 보고 죽어라 뛰느라, 내가 어디쯤 와 있는지도 몰랐죠. 축하를 해야 하는지도, 후회를 해야 하는지도, 스스로에게조차 선뜻 말을 건넬 수 없던 시간들이었어요.
그렇게 숨 가쁘게 지나온 1년을 지나, 이제는 아주 조금, 나를 돌아볼 틈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오늘, 퇴사 딱 2년째 되는 이 시점에서 호퍼스(HOPERS) 뉴스레터로 저의 다음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내려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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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뉴스레터는 ‘망형의 회고록’이 아닙니다. 여기 담을 건 현실입니다. 퇴사, 커리어, 1인 비즈니스, 퍼스널 브랜딩, SNS 수익화, 그리고 그 어디에서도 말하지 않는 생존의 뒷면까지.
약속 드릴 수 있는 건, 공장처럼 찍어내는 뉴스레터, 하지 않겠습니다. 인간적이고 털털하고 솔직하고, 그래서 가끔 오타도 있을 지 모르는, 그런 살아있는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할까요? '퇴사와 글쓰기'부터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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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억대연봉 여의도 증권사 IB 공채 타이틀을 내려놓은 이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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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시장이 좋아서 성과급을 많이 받아 2년차에 억대연봉을 받았고, 그후로는 점차 내리막이었지만, 지금 동기들 얘기 들어보니 많이 회복됐다고 합니다. 첫 부서에서는 사원급 성과급이 얼마 안나오면, 부장님, 팀장님들께서 각출해서 최신형 아이패드 세트를 선물해주시기도 했었습니다 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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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저는 아무 계획 없이 퇴사했습니다. 억대연봉을 받았었고, 웬만하면 잘리지 않는다는 공채, 한국투자증권이라는 국내 top3 증권사에서, 또 그 안에서도 SKY + 해외 명문대 + 회계사 밭이라고 하는 IB(투자은행) 부서에서 남들이 보기엔 안정적인 커리어를 걷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안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균열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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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피로했고, 퇴근 후엔 말수가 줄었고, 일주일 중 단 하루도 ‘나답다’는 감각을 느끼지 못했어요.
직장은 있었지만, 직업은 없었던 거죠. 출근은 했지만, 제가 왜 그 일을 하고 있는지 설명할 수 없었어요. 회사도 사람들도 좋은 곳이었지만, 저와는 맞지 않았습니다.
속으로는 늘 생각했습니다. “이 일, 지금보다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잘하고 싶다’는 마음조차 점점 쓸모없는 감정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성과만 맞추면 되는 시스템, 묵묵함이 덕목이 되는 조직, 창의성과 야망은 눈치 속에 묻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인정받고 싶다는 제 본능이 터져나올 것 같더라고요. 나라는 큰 사람이 있는데, 회사나 부서가 나를 설명하게 두기 싫었어요. 저는 사실, 관종이었어요. “수고했다”는 말보다 “재미있다”, “똑똑하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해?”, “왜 이렇게 매력적이지” 같은 말이 더 듣고 싶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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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안의 에너지는 이미 숨을 참고 있었고, 정말 여느 날과 다르지 않던, 점심 먹고 나른한 오후 2시쯤이었을까요. (그때는 고금리로, 사실상 월급만 받고 일은 없는, 무료한 나날들의 반복이었습니다.)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부장님께 면담을 요청드렸습니다.
“부장님, 저 퇴사하겠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너무 담백하고, 너무 조용했습니다. 마치 예정된 수순이었던 것처럼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용기라기보다 생존 본능에 가까웠어요. 이대로 살면 언젠가 제 자신이 사라질 것 같은.. 그저 그렇게 나이만 들 것 같은. 이주임, 이대리, 이팀장, 저한테는 크게 매력 있게 보이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아무런 계획 없이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무계획이었지만, 단 하나는 분명했어요. 저는, 나답게 살고 싶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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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리볼빙 1,600만원, 전세대출이자 100만원, 카드값, 기타 고정비.. 퇴사 하고 무엇부터 했나요?
무모한 퇴사 같지만, 실은 나를 너무 잘 아는 선택.
지금 생각하면, 미친 짓이었습니다. 아니, 그냥 미친놈이었죠 ㅋㅋ 고정비는 뻔히 나갈 게 보이는데 대기업에서 아무 계획 없이 퇴사라니. 말도 안 되는 선택이었죠. 10에 9은 저더러 미쳤다고 했어요. 무모하다고요. 그럴 만도 했죠.
부끄럽지만, 리볼빙으로 1,600만 원까지 갔던 적도 있었어요. 퇴사 당시엔 어찌저찌 다 갚았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모아둔 돈은 없었고, 고정비는 계속 나가고, 딱히 돈이 들어올 구석은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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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퇴직금으로 몇 달만 버텨보자"
그게 당시 제가 세운 가장 단순한 생존 전략이었어요. 퇴직금으로 들어온 돈은, 세후 약 1,300만 원. 수입이 없으니 막막했지만, 그때의 저에겐 “이제 진짜 돌아갈 곳이 없다”는 강한 체감 하나면 충분했습니다.
왜 그런 선택을 했냐고요? 저는 제 성향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거든요. 제 글을 읽어오신 분들이라면 아실텐데, 저는 스스로와의 대화를 많이 하는 사람이에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 월급이란 마약, 그 ‘괜찮은 대기업 회사원’이라는 Comfort Zone을 절대 벗어나지 못할 걸 알고 있었어요. 저만의 방식으로 배수진을 친 거죠.
궁지에 몰려야 비로소 움직이는 제 성격을 누구보다 제가 잘 알았으니까요. 어릴 적, 만 11살에 말도 안 통하는 영국에 부모님 없이 혼자 유학을 떠났던 그때처럼요.
그때도 어떻게든 버텼고, 살아남았고,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믿었습니다. 무계획이었지만, 무책임하진 않았습니다. 그건 저만의 감각, 저만의 구조였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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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자..... 이제 뭐하지? 글부터 써볼까?
2003년, 어릴 적 혼자 영국 유학을 떠났어요. 말이 통하지 않던 그 시절, 세상과 연결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글’이었어요.
그때 처음 알았죠. 글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연결의 통로라는 것을요. 그땐 지금처럼 카톡도 없을 때라, 이메일, 네이트온, 세이클럽 등이 주 연락 수단이었거든요.
처음엔 가족과의 연결이 필요했어요. 조금 더 지나니, 친구들과의 연결이 필요했고, 사회 속에서 ‘나’를 알리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외로웠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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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고등학생 때 네이트판(이었던 걸로 기억)에 '영국 유학생이 말하는 영국 유학 꿀팁', '영국 vs 한국, 뭐가 다를까?' 이런 주제로 썼던 글이, 큰 반응을 얻고 베스트글에도 여러 번 선정되면서 글의 재미와 짜릿함을 알아갔던 것 같아요. (+ 관종력 충전)
그렇게 글은 제 안에서 조금씩 ‘자존감’이 되어주었고, 세상과 저를 이어주는 ‘정체성’으로 자리 잡았어요. 말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던 감정이나 생각, 제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고 싶은 마음을 글이 대신 전해주었던 거죠.
그래서 저는 글을 게속 썼어요. 대학생이 되어서도, 직장생활 하면서도 마찬가지로요. 이력보다 글이 저를 더 잘 설명해주었고, 성과보다 글이 더 많이 기회를 만들어줬었죠.
제 정체성과 연결의 중심엔 항상 글이 있었더라고요.
하지만 회사에 들어가니, 보수적인 증권사에서 “튀지 마라”, “조용히 있어라” 그런 말들을 듣기 시작하면서, 저는 가장 중요한 연결 지점을 잃었던 거죠.
우울감이 찾아오더라고요. 글을 쓸 수 없다는 건, ‘나’를 숨기고 살아야 한다는 뜻이었어요. 저한테는 그랬어요.
그래서 결국 퇴사한 것도 있었죠. 그리고 퇴사한 그해 여름, 다시 블로그를 켰고,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2023년 7월 16일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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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3개월은 무반응, 그래도 계속 썼어요. 누구에게나 신인 시절은 있다며 위로하면서요.
그랬더니 놀랍게도, 1:1이 아닌 ‘일대다’의 연결이 시작됐어요. 단지 생각을 썼을 뿐인데, 기회가 찾아왔고, 사람들이 찾아왔어요. 파워 J이긴 하지만, 이건 제 계획에 없었던 거예요.
처음에는 "너라는 사람이 궁금하다", "커피 한잔할래요?" 등으로 시작해, 강의 요청이 들어오고, 컨설팅, 협업 제안, 채용 문의까지, 이 모든 게 '글'에서 시작된 거였어요.
그리고 여러분, 찐고수들이 은근히 블로그에 재야의 고수로 많아요. 진짜예요.
저를 조금 더 알고 싶다면, 아래 두 글은 꼭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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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제야 또 한번 확신하게 됐어요. "아, 결국 자기 콘텐츠가 있어야 세상과 연결 되는구나"
그리고 연결되어야 선택받을 수 있고, 선택할 자유도 생긴다는 걸요.
그래서 말하고 싶어요.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는 텍스트 콘텐츠, 그 안에 나를 드러낼 수 있는 5개의 글만 있어도 세상은 조금씩 반응합니다.
그리고 분명하게 연결됩니다.
세상은 바쁩니다. ‘궁금한 사람’만, 만나고 싶은 법이죠. 그리고 궁금한 사람은, 자기만의 콘텐츠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오늘부터라도 글로 쓰세요. 스레드, 블로그 어디든 다 좋아요. 가능하면 둘다 쓰세요. 역대급 조합이라고 단언합니다.
글 쓰면 인생 바뀌냐구요? 바뀝니다. 그 여정을 함께 할게요. 오늘부터입니다.
제 피드에 와서 호퍼스 뉴스레터 잘 보고 있다고 댓글 달아주세요, 저도 맞팔하고 댓글 달아 계정 활성화에 도움드릴게요. (제가 댓글을 달면 이론상 3만명 피드에 뜬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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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가 처음이라 다소 어수선할 수 있습니다.
저도 쓸 때에, 각자 원하고 기대하는 주제와 수준, 깊이, 관점 다 다를텐데 어떻게 다 조율할 수 있을까? 고민 많이 했거든요. 챗GPT한테 신청서를 긁어 분석해보라고 했더니 이렇게 결과값을 내어주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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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피드백을 주시면, 더 빠르게, 더 단단하게 성장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함께 만들어간다는 마음으로 읽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불편한 진실에 도망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해 매주 개선해나가겠습니다. 힘겹게 주신 그 믿음, 절대 쉽게 내려놓지 않을 거예요.
다음 편에서는, ‘글’ 하나로 시작된 기회들이 어떻게 확장되었는지, 그걸 어떻게 사업으로, 사람으로, 수익으로 이어냈는지 조금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눠보려 합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당신의 '나다운 삶'에 이 뉴스레터가 작게나마 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음주 목요일 오전 6시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이제 진짜 시작이에요.
– 망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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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번 주에 만난 소중한 호퍼스(HOPER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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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차 前 SBS 옥성아 PD님
<동물농장>, <SBS 모닝와이드>, <세상에 이런 일이>, <고막메이트>, <티파니와 아침을> 등, 다수의 지상파 프로그램, 디지털 콘텐츠를 제작한 옥성아 PD님과 6월 15일에 있을 커리어 토크:콘 두번째 이야기를 기획했습니다. 다들 오실 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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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버닝썬 자문, 이승우 변호사님
연예인, 방송인, BJ, 인플루언서들의 대표 변호사, 이승우 변호사님과 급 '번개' 타임을 가졌습니다. 변호사인 제 학교 후배와의 연으로 알게 됐는데, 가끔 이렇게 만나 일상, 인사이트 나누고 쿨하게 헤어지는 관계입니다 ㅎㅎ.. 요즘 일복이 터지셨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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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차 광고 마케터 밍데이님 엔비디아 NVIDA AI 개발자 지현님
쓰밤: 쓰레더의 밤을 함께 한 밍데이님, 최근 시엘 결혼정보 러브인서울을 함께 한 지현님과의 커피챗. 마케터, 기획자, AI 개발자가 만나니, 이야기가 끊이질 않았어요. (다음 일정에 늦게 도착할 정도였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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